R 사 전 대표 이 아무개 씨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박 아무개 씨가 2023년 8월 돈을 달라며 매일같이 호소하던 말이다. R 사는 최근 인스타그램 등에서 화제가 되는 식당 프랜차이즈다. 이곳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고급 식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알려져 있다.

관련 사건 고소장과 녹취 내용, 관련자 인터뷰 등을 종합해 보면 사건은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. 이 씨는 2021년 4월 지인 A 씨와 함께 외식 사업 브랜드 R 사를 창업했다. 이들은 R 사를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2022년 3월 프랜차이즈 사업에 전문성을 지니고 있는 B 씨와 의기투합하게 됐다. 이로써 이 씨, A 씨, B 씨는 R 사 지분을 각 40%, 30%, 30%를 소유하게 됐다.
R 사 측 설명에 따르면 이후 이 씨는 ‘나는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’, ‘군 면제에 문제가 있다’는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R 사 주식을 아내에게 명의신탁했다고 한다. 이 씨는 당시 갓 30대에 들어선 나이였다.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씨는 이 지분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명의신탁하는 것으로 변경했다. 이 씨는 R 사 40% 지분을 명의신탁했지만,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R 사 대표로 일했다.
2022년 5월 박 씨는 이 씨가 ‘R 사 인테리어 관련 문의를 하겠다’고 연락을 해 오면서 처음 만나게 됐다. 이때 얘기한 게 잘 풀렸는지 박 씨는 R 사 관련 두 개 업장 인테리어 공사를 맡게 됐다. 그런데 당시 이 씨가 한 가지 특별한 요청을 한다. 인테리어 계약금이 입금되면 ‘본사 마진’은 따로 챙겨 자신의 계좌로 입금해 달라고 했다.
이에 대해 박 씨는 “통상 인테리어 계약을 하면 본사가 일부 마진을 받아가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. 다만 R 사 측에서는 이 씨로부터 본사 마진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. 이 씨가 본사 마진이라며 받아간 돈은 전부 이 씨 개인이 횡령, 배임한 것으로 보이고 이 점에 대해 본사 역시 형사 고소를 진행 중이다. 본사는 이 씨 범죄행위로 인해 본사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부분을 일부 책임지는 등 그 피해가 막심한 상황”이라고 말했다.

예를 들어 6월 7일 충청도 한 지역 공사 대금으로 5800만 원이 본사에서 박 씨에게 입금되자 이 씨는 ‘2200만 원에 부가세 부분 480만 원 해서 2680만 원 먼저 보내주실 수 있냐’면서 ‘3120만 원으로 계약하고, 중도금, 잔금을 박 씨가 받으면 될 거 같다’고 말했다. 박 씨는 “이 씨가 ‘아버지가 건축 일을 크게 하는데 하청업체에서 돈 받을 게 많아서 재산 상속 받는 중’이라며 부를 과시했다”고 당시를 회상했다.
이 씨는 박 씨와 계약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2년 6월 말부터 연체를 하기 시작했다. 박 씨는 3개 매장을 계약하면서 약 1억 원 가까운 계약금을 받아야 했지만 ‘내일 주겠다’, ‘다음 주에 주겠다’는 말로 조금씩 대금 지급을 미루기 시작했다. 공사 대금은 쌓여갔지만 7월 26일 박 씨는 1000만 원만 받을 수 있었다.
2022년 8월 이 씨는 ‘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데 돈이 조금 모자란다’면서 ‘공사금 지급을 조금 미루고 자신이 먼저 쓰겠다’고 얘기했다. 이 와중에도 새로운 계약은 계속 진행됐고, 박 씨가 이 씨에게 빼주는 본사 마진도 따로 지급됐다. 이렇게 R 사가 공사 계약금을 입금하면 이 씨에게 본사 마진을 떼어준 뒤, 나중에 중도금이나 잔금은 박 씨에게 더 챙겨주겠다는 방식으로 합의된 계약이 10건이 넘어가기 시작했다.
한편 본사에서도 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. 2022년 8월부터 이 씨는 R 사 본사와 가맹점주가 작성한 계약서에 이 씨 본인 명의 계좌를 쓰고 자신에게 입금하라고 얘기했다. 또한 이 씨는 회사 계좌번호를 묻는 가맹점주 질문에 “나도 회사에서 쓰는 내 계좌를 모른다”면서 본인 명의 계좌를 알려주기도 했다.

2022년 8월 말 이 씨는 기존에 쌓여 있던 박 씨와의 잔금은 처리하지 않고,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 나갔다. 심지어 박 씨가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한 점포는 오픈을 했는데도, 박 씨는 잔금을 받지 못했다. 박 씨는 “당시 처음 만난 5월에 시작한 공사 대금도 처리를 안 해주고 있었지만, R 사 공사를 많이 계약하게 해줬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”고 설명했다.
8월 이후 R 사 가맹점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지기 시작했고, 못 받은 대금도 늘어갔다. 11월 들어서면서 이 씨 공수표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. 11월 7일 이 씨는 “늦어도 11월 10일 잔금 남은 것들 다 해결해 드리겠다”고 했고, 11월 9일에는 “현금을 8200(만 원) 정도 드리겠다”, 11월 16일 “다음 주에 7000만 원을 현금으로 드리겠다. 현금으로 드려도 되냐”고 했지만,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. 11월 말이 되면서 못 받은 공사 대금이 4억 6000만 원이 됐다.
12월 2일 이 씨는 박 씨에게 “이사를 했는데, 기존 집을 매각 혹은 전세 계약을 해서 돈이 들어오면 전부 해결하겠다”고 했고, 12월 5일에는 “미수금 처리 늦어져서 죄송하다. 12월 27일 집 대금 들어오면 전부 처리하겠다. 와이프 통장에 돈이 많이 있을 텐데, 15일쯤 돈을 받을 일이 있다”는 말도 했다. 이어 12월 7일 이 씨는 “15일 1억 2000만 원이 들어온다”고 말했다.
이 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박 씨는 “500만 원도 힘드냐”고 말했지만 “내일까지 노력해 보겠다”는 답만 들을 수 있었다. 하지만 그 사이 어떤 돈도 박 씨에게 입금되지 않았다.
박 씨가 간절히 기다리던 12월 27일 하루 전 이 씨에게 연락이 왔다. 이 씨는 “내일 1억 원을 주고, 다음 주에 1억 원을 보내주겠다”면서 “입주자가 사정해서 아파트 잔금일이 1월 16일로 늦어졌다”고 말했다. 12월 28일에는 박 씨가 받아야 할 돈은 6억 4000만 원을 넘어섰다.

이 씨는 “한번 멈추면 또 애매해진다. 월요일에 어떻게든 돈을 받을 테니 주말만 멈춰달라”고 얘기했다. 박 씨는 “요즘 완전 빚쟁이가 됐다”고 했고, 이 씨가 “주말에 아빠한테 가서 아빠 찬스 써봐야겠다”고 답변했다. 박 씨는 “이번엔 정말 꼭 좀 부탁드린다. 나도 목숨 걸고 (줄 돈을) 미뤄보겠다”고 호소했다.
이 씨가 집 잔금을 받는다고 말한 1월 16일, 이 씨는 또다시 일주일을 미뤄달라고 요구했다. 이후 이 씨는 다양한 변명으로 돈을 주겠다는 날을 며칠씩 계속해서 늦추는 말을 반복했다. 이 씨는 통장 잔액 5억 원을 보여주면서 ‘많은 돈이 거래돼 입금까지 며칠 걸린다’, ‘1000만 원 먼저 보내고, 곧 다 처리하겠다’ 등의 말이 계속됐다. 3월 30일 받을 금액이 7억 원을 넘어가서 다시 한번 박 씨가 독촉하자 이 씨는 ‘4월 15일까지 해결하겠다’고 말했다.
2023년 4월에는 가맹점주가 본사로 보낼 돈을 자신의 계좌로 받던 이 씨가 주방용품 회사에 줘야 할 대금 지급이 밀려 가맹점주가 돈을 내고도 주방용품 등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기도 했다. 이 씨는 돈을 받지 못한 주방용품 업체에 연락해 “물품대금은 회사에서 곧 지급하겠다. 먼저 가맹점에 물품을 지급해달라”고 요청했다. 이에 따라 R 사가 채무를 지게 됐다.
2023년 4월 12일 이 씨와 동업 관계였던 A 씨와 B 씨는 인테리어 업체에서 돈을 받아 본사 마진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. 이에 이 씨, 박 씨, A 씨, B 씨 등 주요 관계자 5명이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게 됐고, 이 씨가 돈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. 박 씨는 이 씨와 8억 원 공증 계약을 하면서 매달 3000만 원 이상 지급하기로 했고, 만약 못 갚을 시 회사 지분을 넘겨주기로 계약했다.
이렇게 박 씨는 이 씨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. 박 씨는 “이 씨가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을 가끔 보내며 시간을 끌면서 계약을 계속 늘렸다”면서 “이미 받아야 할 돈이 너무 많은 상황이라 달라고 사정하면서,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”고 토로했다. 이 씨가 줬던 믿음은 지켜지지 않았다. 7월 말까지 이 씨는 ‘내일 입금된다’, ‘다음 주 꼭 입금된다’는 말만 반복했다. 이 씨가 받아야 할 돈은 쌓이기만 했고, 7월 30일에는 받을 돈이 9억 원을 넘어갔다.

그 사이 본사에서도 난리가 났다. 2023년 7월 R 사 직원 C 씨가 이 씨 비위를 제보하면서 이 씨가 배임, 횡령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. 이때 이 씨는 평소 지인이자 식음료 사업을 같이 하기로 했던 R 사의 현재 대표에게 부탁하게 된다. 이 씨는 “내가 R 사를 만들었는데 A 씨와 B 씨가 나를 회사 운영에서 배제하려고 하니 이들의 지분 정리하는 것을 도와달라”고 말했다고 한다. R 사 대표는 “당시 이 씨는 ‘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매달 증여받는 금액이 있고, 아버지가 자신에게 증여해 주기 위해 시골에 있는 토지를 내놓았다’는 등 기망하기도 했다”고 회상했다.
R 사 대표는 얼마 안돼 이 씨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2023년 9월 이 씨를 배임, 횡령 등 혐의로 고소하게 됐다. R 사 대표 고소장에 따르면 이 씨가 가맹점주에게 따로 챙기는 등 회사 돈을 배임한 혐의 금액은 8억 3400만 원이었다. 이어 R 사 대표에게 이 씨가 ‘R 사 가맹점 한 곳을 싸게 인수할 수 있다’면서 빌려 간 1억 원, 인테리어 업자 박 씨에게 급하게 주기 위해 빌려 간 1억 4900만 원 등 총 2억 8900만 원에 대해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.
결국 2023년 11월 박 씨도 이 씨를 약 9억 1300만 원에 대한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. 이 씨는 “나중에 알고 보니 박 씨가 ‘대출 신청해 놓았다’며 보여준 문자도 조작된 문자였다”면서 “이 씨는 R 사와 고깃집 두 곳에서 인테리어 사기 행각을 벌인 건데, 공증해 놓았던 것처럼 주기로 했던 R 사 지분은 본인 명의가 아닌 아버지 명의로 다 돌려놓은 상태였다. 또 박 씨는 고깃집 지분이라도 주기로 했지만, 이 역시 이 씨 아버지에게 지분을 다 넘긴 상태로 알고 있다”고 주장했다.
현재 이 씨 사건 고소장은 청주경찰서에서 한 명의 수사관이 전담해 집중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졌다. 이 씨가 사기, 배임, 횡령 혐의를 받는 돈은 파악된 금액만 최소 20억 원이 넘는 상황이다. 고소인들에 따르면 고소가 아직 안 된 피해액까지 합치면 30억 원가량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. 피해자들은 대부분 빠르게 성장하는 R 사를 믿고 돈을 빌려줬거나, 대금 지급을 늦게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. 이 씨가 이 돈을 어디다 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.

이 사건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 씨는 “R 사 프랜차이즈 법인 회사의 대주주가 우리 쪽 지분 40%에 대해 사문서위조 등으로 강제로 지분이전을 해 고소한 사건이 있다”면서 “박 씨도 세무적인 문제가 있다. 내가 말한 부분은 모두 고소한 사실들”이라고 주장했다. 이어 이 씨는 “현재 재판 중인 사안이다”라면서 법적대응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.
김태현 기자 toyo@ilyo.co.kr